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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물_예수처럼 부처처럼 _성경과 무문관의 우연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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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성바오로
글쓴이/이영석
 
출간일/2017년 9월 29일

 

글이 참 좋다, 아껴가며 읽는다. 남은 페이지가 아까워 얼마나 천천히 읽었던가. 이런 책을 만나니 참으로 기쁘다. 비유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붉은 산호초 앞에 넋을 잃는다. 흥미진진함에 흥분하다가 가슴 깊숙이 송곳처럼 푹 찔러오는 날카로움에 다시 깨어나 여기, 지금을 살게 한다.


이 책은 예수회 신부인 저자가 불교 철학을 공부한 후 ‘그리스도교와 불교와의 만남’을 성경과 선승 무문혜개의 해설집인 『무문관』 안에서 그 접점을 찾아내어 풀어내 합일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는 데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무문관>은 중국 송대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9) 선사가 1700여 칙(則)의 공안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48개의 공안을 가려 화두 참구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작가의 “『무문관』에 펼쳐진 침묵의 지혜가 성경 말씀에 한 줄기 신선한 빛을, 성경에 표현된 사랑의 말씀이 『무문관』의 48가지 공안(公案)에 생명의 물을 조금이나마 제공할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서로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종교체험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책 내용의 깊이를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꼭지 끝머리마다 자리한 작가의 짤막한 시는 묵상의 감칠맛을 내면서 다시 글 전체를 되새김질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음의 작가의 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 전체의 구조와 내용을 살짝 맛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은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삶의 기술’(ars vitae)에 대해서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겹친다고 해서 동일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주어와 술어로, 불교는 불교 특유의 목적어와 보어로 삶의 내용과 형식을 풀어나가니까요.
그렇다고 문법에 너무 끌려 다녀서는 핵심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우리말로 소통할 땐 자유자재이지만, 영어를 할라치면 그 놈의 문법 생각에 언제나 꽉 막혀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요. 문법을 굴려야지 그것에 굴림을 당해서는 노예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노예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두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한 친구는 길이 좁고 문도 좁다(마태 7,13)고 말하고, 불교 신자인 다른 친구는 길이 너무 넓어서 문이 아예 없다(大道無門)고 말합니다.
진리로 통하는 입구에 서서 서로 달리 표현합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아마도 그리스도교 신자는 진리를 인격적인 사랑과 자비의 측면에서, 불교 신자는 비인격적인 지혜의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인격적 존재에게로 다가가는 길은 당연히 넓고 문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문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 속 한 구절


예수와 부처가 전한 ‘삶의 기술’의 핵심은 마음입니다. 물론 헛된 망심(妄心)이 아니라 진실한 진심(眞心)입니다. 허나 헛된 마음속에 진실한 마음이 애초부터 머물고 있으니 그냥 마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떠날 때, 우리가 가지고 갈 것도 또 버리고 갈 것도 없습니다. 다만 무엇인가를 남기고 갈 뿐입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순간,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것을 통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랑은 다툼과 상처와 갈등을 자양분 삼아 인내와 화해, 그리고 용서와 받아들임 속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개념은 실재를 온전히 드러내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한계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언어에 길들여진 우리는 상징이 상징임을 망각한 채 절대적 실체로 착각하면서 절대화합니다. 말과 개념에 얽매여 실재를 놓쳐 버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게다가 상징을 절대화하게 되면서 정작 상징을 만든 사람이 상징의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움이 본래 정해진 곳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받아들인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지가 자리 잡은 산과 강에서 불어오는 평온한 바람과 맑은 기운이 성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자의 숭고한 삶으로 인해 거룩함이 그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신(神)은 언제나 우리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어라 이름 지어 부르던 상관없이 진리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진리를 잊어버리고 버릴 뿐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우리 곁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을 잊거나 버릴 따름입니다.


기도는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도를 바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기도가 우리를 누군가에게 바칩니다.


세상은 자신을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고 듣기는커녕 언제나 마음이 지어낸 생각의 그림, 곧 관념을 통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습니다.

깨달음이란 진리와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졌기에 진리를 자기 밖에서 대상으로 고찰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살아 생동하는 자기 안에서 진리와 하나 되어 춤추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면 더 이상 하느님을 자기 밖에서 대상으로 찾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차립니다. 나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이 현존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기에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향기를 머금은 꽃들은 소리치지 않습니다. 향기를 소유하지 않고 아낌없이 나눌 뿐입니다. 자유 그 자체입니다. 나비와 벌들은 그 향기에 취해 먼저 다가옵니다. 향기로운 삶이 설교이고 복음입니다.


기도와 명상은 마음 운동입니다. 육체적인 근육을 키우기 위해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듯이, 마음속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 기도와 명상입니다. 마음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우리 내면에 고요함과 평온함, 그리고 청명함과 같은 정신적 근육이 자라게 됩니다. 이런 근육이 우리 내면에 자리하게 되면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웬만한 자극, 곧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도 평지처럼 쉬이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있는 것에 대한 집착과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역시 똑같은 집착일 뿐입니다.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도 지나치면 집착입니다. 텅 빈 충만의 삶을 소유하겠다는 생각도 집착입니다


우리의 착각 중에 우리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착각만큼 큰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느님에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우리를 하느님에게 드립니다. 기도는 우리를 텅 빈 충만 자체인 하느님에게 바칩니다. 기도는 우리를 진리 자체인 하느님에게 인도합니다.



들어가며: “좁은 문으로….” “문이 없는데….”


1. “주님을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시나요?” “무無!”
2.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뺨을 맞으면 손뼉 치며 웃어라.”
3.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손가락을 잘라 버려라.”
4.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수염이 없지?”
5.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올라가지도 않았는데요.”
6.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꽃 한 송이 들어 보이며….”
7.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침은 먹었는가?”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 “허공과 바다를 자유자재로 달린다.”
9. “나는 책임이 없소.” “너 때문에 성불하지 않았는데….”
10.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그렇게 취하고선….”
11.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안에 누가 계신가?”
12.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주인장 계시오?”
13. “주님께서 계셨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한마디를 아는구나.”
14. “신을 벗어라.” “머리에 신어라.”
15.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옵니다.” “이 밥통 같은 놈!”
16. “저 사람은 어째서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온몸으로 보아라.”
17.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요?”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버린 것이다.”
18.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삼麻 세 근!”
19. “하늘의 새와 들에 핀 꽃을 보아라.” “평상심을 지니고….”
20. “산이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두 다리조차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
21.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마른 똥 막대기!”
22.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 앞의 찰간이나 넘어뜨려라.”
23. “와서 보아라!” “본래면목本來面目을.”
24.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말이나 침묵에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25.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사구四句를 떠나 백비百非를 끊었기에.”
26.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오른쪽과 왼쪽에.” “일득一得 일실一失!”
27.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다.”
28.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훅 불어 꺼 버려라.”
29.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다만 마음이 움직일 뿐!”
30.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마음이 곧 부처다.”
31. “쟁기에 손을 대고 뒤돌아보지 마라.” “곧장 가라!”
32.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명마名馬처럼.”
33. “진리가 무엇이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34.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닌데….”
35. “너 어디 있느냐?” “어느 것이 진짜냐?”
36.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말이나 침묵으로 대하지 말고.”
37.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데,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뜰 앞의 잣나무!”
38. “낙타가 바늘귀로….” “머리도 몸도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는 통과하지 못하지?”
39.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말에 떨어져 버리니….”
40.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물병을 걷어차 버리든지.”
41. “무거운 짐 진 자 나에게 오라.” “이미 가벼워졌는데….”
42.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없나요?”
43.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44.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있으면 주고 없으면 뺏겠다.”
45.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석가와 미륵이 그의 종이니….”
4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온 세계가 너와 하나다.”
47.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어떻게 죽겠느냐?”
48. “나는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다.” “그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글쓴이 : 이영석

예수회 신부. 미국 버클리 예수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철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성과 영성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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